한자는 우리 글자
... 신시에 록서(鹿書)가 있었고 자부(紫符)에 우서(雨書)가 있었고 치우(蚩尤)에 화서(花書)가 있었다. 투전문속(鬪佃文束)은 바로 그 남은 흔적이다.
복희에 룡서(龍書)가 있었고 단군(檀君)에 신전(神篆)이 있었다. 이러한 글들은 백산 흑수 청구 구려 등지에서 널리 씌어졌다.
부여 사람 왕문이 처음으로 전(篆)이 번거롭다 하여 획을 줄이고 새로 부예(符隸)를 만들어 썼다.
진(秦)나라 정막이 숙신(肅愼)에 사신으로 갔다가 한수(漢水)에서 왕문의 예법(隸法)을 얻어다가 글자의 획을 조금 바꾼 것이 지금의 팔분(八分)이다.
진(晉)나라 왕차중이 해서(楷書)를 만들었다. 왕차중은 왕문의 먼 후손이다.
문자의 근원을 따져보면 모두 신시(神市)에서 비롯한 법이며 지금의 한자(漢字) 또한 그 가지임에 틀림이 없다. ...
복희에 룡서(龍書)가 있었고 단군(檀君)에 신전(神篆)이 있었다. 이러한 글들은 백산 흑수 청구 구려 등지에서 널리 씌어졌다.
부여 사람 왕문이 처음으로 전(篆)이 번거롭다 하여 획을 줄이고 새로 부예(符隸)를 만들어 썼다.
진(秦)나라 정막이 숙신(肅愼)에 사신으로 갔다가 한수(漢水)에서 왕문의 예법(隸法)을 얻어다가 글자의 획을 조금 바꾼 것이 지금의 팔분(八分)이다.
진(晉)나라 왕차중이 해서(楷書)를 만들었다. 왕차중은 왕문의 먼 후손이다.
문자의 근원을 따져보면 모두 신시(神市)에서 비롯한 법이며 지금의 한자(漢字) 또한 그 가지임에 틀림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