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 기(機)
최현배 선생이라는 분이 비행기(飛行機)라 하지 말고, 날틀이라 하자 하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때 까지만 하여도 진정코 우리말을 지키려는 실천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機)를 찾아 보면, 틀 기, 또는 베틀 기라고 되어 있습니다. 요즘에는 틀이라는 순우리말은 저 멀리에 있고, 온통 기자를 붙여 ~기(機) 라고 합니다. 선풍기, 세탁기, 조리기, 청소기 ...
어떤 일을 해내는 것을 틀이라고 합니다.
베를 짜내는 일을 하는 것을 베틀이라 하는 것이 그 예가 되겠습니다.
할머니께서 살아 계실 제, 선풍기를 늘 바람틀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린 나는 할머니에게 바람틀이 아니고 선풍기라 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어디에도 바람틀이라는 말은 없고 오로지 선풍기라는 말만 있어 나는 바람틀이라는 말은 틀린 말인 양 느꼈던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바람이 저절로 나오게 하니까 바람틀이지 뭐냐. 바람틀이 싫으면 너는 바람통 (바람이 나오는 통)이라고 하려무나 하시곤 했습니다. 내가 그토록 어두웠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니 스스로 우습읍니다.
재봉틀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제는 그 마저도 쓰지 않고 아예 서양말을 가져다가 미싱이라고 합니다. 재봉 (裁縫)이라는 말은 한자어 이고, 바느질을 하여 옷을 만드는 것을 말하므로 재봉틀은 옷틀 또는 바느질틀 또는 꿰맴틀 처름 이름을 붙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어째서 우리말을 버리고 한자어를 만들어 내는 것인가 싶습니다.
나아가 한자어가 우리 겨레가 쓰던 그 한자인가 아니면 다른 나라의 한자인가... 그러한 것도 또렷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우리 일반 사람들은 한자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되었는가 하는 물음이 생깁니다.
한자를 익히 알지 못하는 일반 사람들이 한자말을 쓰야 하는 처지에 놓이니 맞지 않는 말들이 종종 나옵니다.
'역전앞에서 만나자'와 같이 역전앞이라고 합니다. 역전(驛前)이라는 말의 전(前)자는 앞이라는 뜻이므로, 역전이라는 말은 이미 '역앞'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역전앞이라고 하면 '역앞앞'이 됩니다. 이는 한자를 익히 알지 못하는데서 비롯한다 하겠습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의 무궁화꽃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들을 볼 때, 한자어가 자연스레 쓰이기 시작한 것은 결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어(國語)라는 말 부터도 그렇습니다. 나라말 또는 겨레말이라고 하면 될 것을 국어라는 한자어로 이름 붙이고, 그 국어사전에는 온통 한자어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차라리 한자어(漢字語) 사전이라 하는 게 더 어울릴 지경입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機)를 찾아 보면, 틀 기, 또는 베틀 기라고 되어 있습니다. 요즘에는 틀이라는 순우리말은 저 멀리에 있고, 온통 기자를 붙여 ~기(機) 라고 합니다. 선풍기, 세탁기, 조리기, 청소기 ...
어떤 일을 해내는 것을 틀이라고 합니다.
베를 짜내는 일을 하는 것을 베틀이라 하는 것이 그 예가 되겠습니다.
할머니께서 살아 계실 제, 선풍기를 늘 바람틀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린 나는 할머니에게 바람틀이 아니고 선풍기라 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어디에도 바람틀이라는 말은 없고 오로지 선풍기라는 말만 있어 나는 바람틀이라는 말은 틀린 말인 양 느꼈던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바람이 저절로 나오게 하니까 바람틀이지 뭐냐. 바람틀이 싫으면 너는 바람통 (바람이 나오는 통)이라고 하려무나 하시곤 했습니다. 내가 그토록 어두웠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니 스스로 우습읍니다.
재봉틀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제는 그 마저도 쓰지 않고 아예 서양말을 가져다가 미싱이라고 합니다. 재봉 (裁縫)이라는 말은 한자어 이고, 바느질을 하여 옷을 만드는 것을 말하므로 재봉틀은 옷틀 또는 바느질틀 또는 꿰맴틀 처름 이름을 붙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어째서 우리말을 버리고 한자어를 만들어 내는 것인가 싶습니다.
나아가 한자어가 우리 겨레가 쓰던 그 한자인가 아니면 다른 나라의 한자인가... 그러한 것도 또렷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우리 일반 사람들은 한자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되었는가 하는 물음이 생깁니다.
한자를 익히 알지 못하는 일반 사람들이 한자말을 쓰야 하는 처지에 놓이니 맞지 않는 말들이 종종 나옵니다.
'역전앞에서 만나자'와 같이 역전앞이라고 합니다. 역전(驛前)이라는 말의 전(前)자는 앞이라는 뜻이므로, 역전이라는 말은 이미 '역앞'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역전앞이라고 하면 '역앞앞'이 됩니다. 이는 한자를 익히 알지 못하는데서 비롯한다 하겠습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의 무궁화꽃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들을 볼 때, 한자어가 자연스레 쓰이기 시작한 것은 결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어(國語)라는 말 부터도 그렇습니다. 나라말 또는 겨레말이라고 하면 될 것을 국어라는 한자어로 이름 붙이고, 그 국어사전에는 온통 한자어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차라리 한자어(漢字語) 사전이라 하는 게 더 어울릴 지경입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